이론이란 누군가의 경험이나 체험이 바탕이 되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체험을 토대로 이론으로 정립된 것들의 의미를 확인하게 된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이 쌓이며 새로운 이론들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며, 누군가에 의해서 기존의 이론은 진보되거나 퇴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론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두고, 변화하는 환경에 속에 있는 지니의 성장과 발달에 관심을 가지고 주변 탐색을 하였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서 복지관 특수교육프로그램을 그만두었다. 유아교육과 특수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나 이론 혹은 달리 어떤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지니에게 무언가 자의식이 생기고 있는 것 같았다. 좋아하던 공간들에 대해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았다. 항상 뛰어 들어가던 교육실이었는데, 문 앞까지 엄마 손을 잡고 가서는 느린 동작으로 마지못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우리의 몸은 의식과 생각의 표현 도구이므로 아이들이 향하는 시선은 곧 마음의 표현이다.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있으면, 그들의 눈빛, 몸짓, 행동이 곧 그들의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수교육을 받으면서 교육 상황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5년 동안 1주일에 받는 교육 프로그램은 매일 가는 조기교실, 주 1회 운동프로그램, 매일 가는 통합어린이집, 그리고 주 2회 가는 놀이, 미술, 음악, 인지 치료 중 하나, 이렇게 4가지는 늘 받고 있었다. 아직 어리니까 이렇게 몰아치듯이 다니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서로에게 매여서 다니는 생활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모든 상황을 다 통제해주지도 못할 것이다.

지니가 어떠한 프로그램에 얽매여 있지 않고 혼자 지내는 시간, 즉 비어 있는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스스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무료한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여 엉뚱한 생각을 하고 엉뚱한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취미 생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니가 그림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지니가 그려 놓은 그림들을 보면서 관찰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경우는 하나의 사물을 그리려고 할 때, 모델을 앞에 두고도 방금 살펴본 이미지를 기억하지 못해서 다시 보기를 반복하게 되는데, 지니는 그렇지 않았다. 특징을 잘 포착하기도 했고, 관찰한 이미지에 대한 기억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니가 그려 놓은 그림들에 대해서는 과장하여 반응하며 칭찬해 주었다. 복지관, 어린이집, 학교에서 만들어 온 작품들도 집에 걸어 놓고 호들갑스럽게 감탄하며 칭찬해 주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자의 제목처럼 칭찬은 새로운 동기를 유발하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 통합어린이집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서 완전통합을 하게 된 지니는 30여 명의 말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 혼자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도 못했을 터이니, 무리 지어 있는 아이들 틈에 끼어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친구들이 선생님과 열심히 공부할 때, 스케치북을 펼쳐 놓고 자기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있었지만, 항상 눈과 귀를 열어 두고 있었다.

학교생활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는데, 그중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약한 아이들을 놀리는 짓궂은 남자아이들을 못 견디게 싫어했다. 그런 날은 못생긴 얼굴의 아이를 그려 놓고 연필로 막 찍으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장난꾸러기에 짓궂은 아이는 못생긴 얼굴, 착한 아이는 잘생긴 얼굴이라는 편견이 굳어져 갔다.

학원에 가지 않으니, 그 비용으로 문구사나 화방에 가서 가지고 싶은 도구를 사도록 해주었다. 스케치북이나 A4용지를 박스로 사놓고 사용을 하니, 두, 세 개의 선만 그리고 폐지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고 제대로 형태를 잡지 못한 그림들도 부지기수였다. 껍질을 돌려서 벗기는 색연필은 껍질을 너무 벗겨서 사용하다 부러지고, 돌려서 심이 올라오는 색연필은 길게 뽑아서 사용하다 부러지거나 빠져 버렸다.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면 새것을 사게 되고 쓰다가 남은 것과 새것들이 쌓이게 되었다. 물감을 사용하게 되니, 방바닥에 쏟기도 하고, 옷에도, 이불에도, 집기들에도 물감 얼룩들을 남기게 되었다. 우리 집은 늘 지저분했고, 정리가 되지 않은 집이었다.

장은미 교육학 박사/한국장애인가족문화연구소장  jem9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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