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생님들과 만남 - 강원종합복지신문

지니의 장애를 알게 되면서 나는 지니와 24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스스로 이런 상황이 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며, 매스컴에서는 어린 자녀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감당하기 어려워 좋지 않은 선택을 한 젊은 엄마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하던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지니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활동반경을 최소화하여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만을 남겨두었다.
그런 면에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 되어준 친구 미숙이는 특별한 인연이다.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며, 계속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지니에 대하여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주변인 중의 하나였다.

적응이 어려운 아이를 둔 학부모가 넘어야 할 심리적인 학교의 문턱은 높다. 학부모가 되기 전부터 이런 상황을 어떻게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지가 참으로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을 6개월 정도 앞둔 시점에 인근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 미숙이가 교과 교사로서 4주간 시간강사를 구하고 있다는 정보를 내게 주었다.

지니의 초등학교 입학과 적응에 대한 염려가 있었던 상태여서 나는 기꺼이 지원서를 제출했다. 당시는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이전이었기에 교직원의 네트워크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던 시절이었다. 나와 지니가 살아날 방법이 이렇게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였고 지니는 안면 있는 선생님께 연한 눈웃음과 미소를 보내며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의 삶에서 가장 고마운 은인으로 지니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던 고마운 친구 미숙이는 다음 해 다른 학교로 이동했다.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 날, 담임선생님과 함께

지니가 2학년이 되면서 나는 지니의 학교에서 교과 시간강사를 하면서 오랜 공백을 뒤로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지니와 2년 동안 같은 학교로 등·하교하며 가까이에서 지니의 성장을 지켜보며, 내가 다시 중등학교로 돌아가서 지니에게 이런 교육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지니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 될 것이다. 또한,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지니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가지고 있었던 내 마음의 빚을 줄일 수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니가 학교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내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어느 순간에는 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단어였지만, 내 생각이나 선택과 관계없이 내 삶에서 장애라는 단어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특수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특수교육대학원에 입학하였고, 이전 교직경력이 바탕이 되어 지적장애 특수학교 근무를 시작하며 특수교육현장으로 들어갔다.

대학원 박사과정 1학기 과제를 하면서 만들어 보았던 중요한 인적 네트워크의 중심은 지니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던 친구임을 알 수 있다.

지니는 엄마 친구였던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 덕분에 만들어진 분위기를 4년간 유지하게 되었다. 다시 이사를 하고 5학년이 되어서 집 근처 학교로 전학을 했다. 4학년까지 잘 적응했기에 그 분위기가 아깝기는 했지만, 새로운 상황에 던져놓아 보았다.

5월 30일 소운동회가 있던 날 근무지에 외출신청을 하고 지니의 학교에 갔다. 학급 아이들과 운동장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거의 ‘고립’ 되어 있는 상황을 눈앞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운동회가 열리고 학급 아이들이 모여 있는 운동장 외곽에서 친구들이 스치거나 부딪치는 것에 얼굴을 찡그렸고, 친구들은 또 그런 지니를 피해 주위를 돌아가고 있었다. 전학하며 담임 선생님께는 지니가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아이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부분에 도움을 주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나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아는 친구들도 없고, 자기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새로운 환경이 서툴기도 하고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상황에서 3개월을 지냈다. 그날 무거운 마음으로 내가 본 상황을 그대로 써서 담임선생님께 e메일을 보냈다. 상황을 전해 들으시고 고심 끝에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호소를 하셨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온 날

그 후 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서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으며, 아이디어를 내 ‘마니또’를 하기도 했고, 생일에 초대를 받기도 하고, 또 반 전체가 지니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오기도 했으며, 햄스터가 새끼를 낳았다고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지니의 관심사가 다르고 제 또래와 어울리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였으며, 달리 말하자면 놀 줄을 몰라서 아이들과 지니가 어울리도록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 고민스러웠었다. 상황 파악이 빠른 영리한 아이들이라 항상 지니에 대한 질문을 나에게 하였다.

‘아줌마, 지니는 왜 그림만 그려요?’
‘아줌마, 지니는 뭐하며 노는 거 좋아해요?’
‘지니는 어느 나라 사람이예요?(발음과 억양이 부자연스럼움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
담임선생님과 e메일을 주고받으며 지니가 자라는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니를 과신하여 지나친 기대를 했던 것을 반성했고, 도움은 구체적으로 요청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학년 담임선생님은 학생들 작품을 학생별로 모아놓으시고, 학급 문집을 만드셨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 작품에 관심이 많으셨고, 지니 또한 여기에 부응해서 열심히 그림에 몰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