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통합으로 초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지니는 아이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지는 못했으나, 일상적인 생활은 잘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침 일찍 등교하여 아무도 오지 않은 교실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화분에 물을 주고, 꽃잎이 살포시 떠 있는 다관에 물을 보충해 주는 등 교실 정리하는 것에 몰입해 있었다. 아마도 당번 활동을 잘 수행하여 담임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이 일에 더욱 재미를 붙였던 것 같았는데,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일 년 내내 일등으로 등교를 해야 했다.

이때, 나는 교과 시간강사가 되어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지니는 매일 아침 누가 먼저 교실에 들어갈까 염려되어 교문에 들어서면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서 교실로 들어갔다. 어쩌다 멀리서 오는 친구를 발견이라도 하면, “야, 너 왜 일찍 오는 거야” 하며 거의 울다시피 소리치며 뛰어 들어갔다.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기는 했으나 지니가 교실 정리하는 일에 대해서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으므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일 년 내내 서둘러 아침 일찍 등교했다.

나는 덕분에 한 시간 가까이 일찍 등교하여 아침 시간을 여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학년 부장 선생님이 매일 이렇게 일찍 등교해야 하니 힘들어서 어떻게 하냐며 안타까워하셨는데, 일찍 등교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 일이어서 다행이라고 말씀드렸다. 지니는 요즘도 꽃이 피고 떨어질 때면, 싱싱한 꽃잎을 주워서 투명 유리잔에 물을 담아 꽃잎을 띄워놓는다.

발달장애는 발달지체를 동반한다. 지적능력이 검사영역에 따라 발달의 양상이 심한 편차를 보인다. 노심초사했던 초등학교 생활에 적응이 되어가고, 기본적인 일상생활에서도 어려움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 지니의 발달 상황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지지 않았을까 은근 기대가 되었다.

3학년 때 장애인복지관에 의뢰해서 검사해 보았는데 검사소견서를 보니 의뢰 사유에 ‘그동안 받아온 교육과 치료 후의 아동의 변화를 알고 싶고 CT가 가진 전반적인 발달수준과 특성을 알고 싶어서 정서, 인지, 행동적 평가를 실시한다’고 되어 있었다.

심리검사 소견서에 따르면 K-WISC-Ⅲ(한국웩슬러아동지능검사)의 검사영역에서 동작성 검사에 비해 언어성 검사의 점수가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격차가 너무 심했다. 소검사프로파일로 보여주는 그래프에서는 ‘상식, 공통성, 산수, 어휘, 이해, 숫자’로 구분되는 언어성 검사 점수는 바닥 수준이었고 이에 비해 ‘빠진 곳 찾기, 기호쓰기, 차례 맞추기, 토막 짜기, 모양 맞추기, 동형 찾기, 미로 찾기’로 구분되는 동작성 검사에서는 언어성 검사와는 현격히 차이를 보이며 그래프의 선이 올라가 있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니 검사결과를 기대할 상황이 아니었다. 문항의 지문을 이해할 만큼의 언어 개념발달이 이루어져 있지 않은 상태였으니, 지능검사 같은 동년배들과 상대적 위치 측정으로 현재의 상태를 확인하는 표준화 검사 같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지니를 평가하려 시도했던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 표준화검사 도구에 의한 평가가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하고, 그림인성검사와 전체적인 평가결과에서 잠재력이 있다는 긍정적인 문구에 방점을 두기로 했다.

2003년 4월 복지관에 의뢰한 심리검사 소견서 1

(5) 그림인성검사(HTP)
▷ 그림의 특성 : 탄탄한 벽돌집을 그렸고 단풍진 튼튼한 가을 나무를 그렸다.  사람을 팔을 벌리고 다리 오무려 서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손의 손톱까지 그릴 정도로 세밀하게 그림을 그린다.
▷해석 : 그림의 수준으로 볼때 소근육발달이 매우 발달된 것으로 보이며 그림만으로 볼 때는 또래보다 우수한 발달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가정에 대해서 안정된 느낌을 가지고 있으나 외부의 대인관계에서 다소 긴장되고 불편감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CT의 언어지체경향으로 인해 대인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보이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2003년 4월 복지관에 의뢰한 심리검사 소견서 2

소근육 및 협응력, 지각-운동협응력 등은 우수한 발달을 보이고 있는데 반해 언어이해 및 어휘력, 추론능력, 개념형성 능력이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이러한 인지적 불균형으로 인해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보이고 과제를 수행하는데 좌축경험을 많이 겪었을 것으로 보이며 이로써 정서적인 위촉감과 우울감을 2차적으로 수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매우 취약한 언어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초기 양육환경에서 충분한 정서적 교류 기회를 가져 사회적 상황에 대한 맥락적 이해가 이면적으로나마 이루어지고 있어 생활에서의 적응 잠재력을 높은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를 잘 살려 독립기능을 얻어 자립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겠다. 또한 그리기 활동이 다른 기능에 비해 우수하고 이것이 CT의 매우 큰 강점이니 이것을 잘 살려주눈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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